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교양과학]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따뜻한 과학 이야기

by livealittlecrazy 2024. 4. 9.
반응형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쓴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는 과학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과학이라고 하면 이성적, 논리적, 차가운 이라는 수식어구가 떠오른다. 우리의 살고 있는 세계를 과학의 아름다움과 함께 연결하여 따듯한 봄과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꼭지 별로 이야기한 과학지식도 다시 한번 정리되어 있다. 과학적 지식만을 얻고 싶다면 보라색으로 표기된 부분만을 읽어도 좋을 듯한다.

 

1부는 우리는 모두 우주에서 온 별의 먼지(인간이라는 존재로 산다는 것)

2부는 적어도 지구 위에 고립계는 없다(관계 물리학)

3부는 모든 변화는 상전이처럼 온다(보이지 않는 힘들의 세계)

4부 과학이 지식이 아닌 태도가 될 때 (이성의 눈으로 복잡한 세상을 꿰뚫는 법)

5부 더 나은 삶을 향한 아름다운 안간힘(공존에 관하여)

 

빈칸이 과학을 만들다, 보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진공

멘델레예프가 남긴 이완의 주기율표의 진정한 가치는 표 안에 놓인 '빈칸'에 있다. '아직 모름'을 일전하는 태도가 과학 발전의 주된 원동력이다. 제대로 된 과학 안에는 빈칸이 도처에 널려있고, 과학은 함께 힘을 모아 빈칸을 채워나가는 인규 공동의 지난한 노력의 과정이다. 

 

과학의 빈칸을 우리  삶의 빈칸으로 옮겨온다. 저자는 공자의 논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 다양한 책과 철학자의 말에서 부터  공통된 빈칸의 중요성을 연결한다. 빈칸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무의 인정이다.

 

또 다른 예시로는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무' 혹은 '정말로 비어있음'을 뜻하는 진공이다. 물리학은 진공이 역설적으로 진공이 아님을 발견했다. 진공은 짧은 순간 양자요동으로 수많은 입자와 반입자가 쌍생성 쌍소멸을 반복하는 동적인 존재이다. 

 

세상에도 과학과 동일한 부분이 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깨끗한 건물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일수록 더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빈칸'은 소중한 존재이며, 정말로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사회적인 부분에서 빈 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우리 개인의 삶에서 적용할 수 있다. 학습과 경험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했다고 하는 말은 이 전에 해보지 못했거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을 때 '학습했다.' 혹은 '좋은 경험을 했다.'라고 말한다. 모든 개인의 각자의 삶에 서로 다른 보이지 않는 빈칸이 있을 것이다. 이 빈칸들을 발견하고, 채워나가려는 노력이 더해질 때, 우리는 한층 성장할 수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우리의 삶의 빈 공간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다채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아름다운 단풍이 주는 과학이야기, 지속을 위한 버림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단풍이야기다. 단풍을 보면, '가을이 왔구나. 계절이 바뀌었구나. 시간이 흘렀구나.' 라는 생각만 해보았지 과학적인 부분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아름답다는 외적인 부분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단풍이 우리 삶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기 위해 효율적으로 물을 사용하는 나무처럼, 우리가 가진 에너지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가을날 멋진 단풍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과 복사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며 살아가는데 가을에는 햇빛의 양이 줄어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푸른 잎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적 비용이 늘어나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물의 공급이 끊긴 나뭇잎의 세포는 죽고, 그 안에 있는 엽록소도 죽는다. 그래서 엽록소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던 생체분자들이 다채로운 빛을 낸다는 것이다. 

 

 

단풍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무 그늘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고자 한다. '고전역학의 나무 아래에 서서 바라본 양자역학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의 나무 아래에 서야 한다.'라는 이해를 다른 부분이 있다. 저자는 이해라는 개념을 나무와 연결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의 공통의 나무 그늘 아래에 서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하며,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객관적인 논리보다 너그러운 받아들임이다. 과학의 이해도 쿤의 같의 패러다임의 나무 아래에 있을 때 과학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 패러다임의 나무는 수많은 가지와 나뭇잎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머리 위의 나뭇가지와 나뭇잎도 필요하며,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의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유한 나무를 응용하자면 세상에는 여러 나무가 있고, 우리가 그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보다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에 되어 보는 것이다. 즉, 나의 나무와 그 사람의 나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충분할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응형

댓글